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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편에서는 책상 정리, 관물대, 가계부의 기억에 비추어 회사의 계약관리가 부실해지는 과정을 살펴보고, 그 이유가 정해진 규격, 점검하는 사람 또는 시스템, 점검의 주기가 없다는 데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규정과 담당자를 두는 것만으로는 왜 부족한지, 계약의 변경이력이 어떻게 회사의 증거가 되는지, 시스템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비용-편익의 비대칭 구조로 인하여, 계약관리의 일관성과 항상성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편 말미에 남긴 질문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사 내부에 계약관리 규정을 만들고, 담당자를 지정하고, 분기마다 점검하면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실제로 많은 회사가 그렇게 하지만, 곧 문제가 재발하면서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이런 조치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는 비용을 치르는 사람과 이익을 얻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계약 조항 변경을 위해 협상을 하면서 그 이력(history)을 관리, 보고하는 사람은 현업 담당자이고, 그 자세한 맥락과 경위가 필요한 사람은 1~2년 뒤의 후임자이거나 실사, 분쟁 대응을 하는 법무팀입니다. 다시 말하면, 당장 계약을 체결해서 실적을 인정받는 현업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계약을 세밀하게 관리할 유인이 낮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부동산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주택 공급 정책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비용을 쓰면서 택지를 매입하고 인허가를 처리하는 부담은 현 정부가 지지만, 준공 이후 가격 안정이라는 이익은 다음 정부가 누리게 됩니다. 즉, 비용은 당장 내가 치르고 이익은 나중에 남이 얻는 비용-편익의 비대칭 구조에서, 사람의 의지와 선의만으로는 일관성과 항상성을 지키기 어려워집니다. 결과적으로 계약관리는 시스템에 맡기는 편이 가장 적절하고 안전합니다.
일관된 계약관리는 큰 분쟁에서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그럼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계약관리가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얼만큼의 효용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편에서, 수백억, 수천억이 달린 분쟁의 승패가 10년 전 계약서 한 장에서 갈리고, 그 조항이 누구의 요청으로 어떻게 수정되었는지가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와 관련된 사건들을 몇 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2021년 남양유업 경영권 매각 분쟁입니다. 매도인 측이 계약서에 없는 구두 합의를 주장하며 주식 이전을 거부한 사건인데, 법원은 계약서의 문언에만 기대지 않고 계약서가 만들어진 경위를 확인했습니다. 5월 20일 초안 검토, 5월 25일 매도인의 지시에 따른 조항 수정과 신설, 5월 27일 서명 페이지 교환까지 계약서가 만들어진 과정이 판결문에 날짜별로 적혀 있고, 당사자들이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까지 살핀 끝에 서명일까지 작성된 어떤 서면에도 구두 합의의 내용이 없다는 점이 결론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2006년 금호아시아나 컨소시엄의 대우건설 인수 사건입니다. 진술 및 보장 조항에 붙은 "매도인대표의 이사들 및 대우건설의 이사들이 인지한 범위"라는 문구를 어떻게 읽을지가 다투어졌는데, 대법원은 협상 과정에서 매도인 측이 "매도인대표의 이사들"만 넣은 초안을 제시했고 매수인 측이 배상 범위를 넓히기 위해 대우건설의 이사들을 추가하자고 했다는 경위를 근거로 당사자의 의사를 해석했습니다. 누가 어떤 문구를 초안에 넣었는지, 누가 무엇을 추가했는지, 그 조항이 어떤 경위와 맥락으로 수정, 추가된 것인지 여부가 10년 뒤에 해석의 기준이 된 것입니다.
두 사건을 통해 제가 앞서 말씀드린 계약관리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계약체결 몇 년 뒤에 분쟁이 생기면, 법원은 최종 계약서와 함께 초안이 언제 오갔는지, 어느 조항이 누구의 요청으로 고쳐졌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증거로 판결을 합니다. 요컨대, 우리 회사가 계약의 수정 이력과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상대방만이 이를 보유하고 있다면 상대방의 기록을 기준으로 판단이 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계약을 관리하는 것은 수백억, 수천억의 손실로부터 회사를 방어하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2편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계약관리를 담당자의 의지에 맡기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초안과 수정본은 담당자의 PC와 메일함, 상대방과 주고받은 외부 메일함에 나뉘어 있어서, 인사이동이 있는 순간 그 계약의 이력 관리가 단절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불가능한 일은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요즘 화제인 마운자로를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식욕을 통제하면 살이 빠진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일관되게 통제하기는 어렵습니다. 계약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약을 관리하면 좋다는 것, 변경이력과 각 버전을 잘 정리해 두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이를 일관되게 실행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프릭스와 같은 솔루션의 도입이 계약관리의 해결책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계약관리를 시스템화하는 것이 기업의 리스크 관리와 비용 절감에 직접적인 효용을 준다는 것과, 제대로 된 계약관리 시스템을 갖춘 기업은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많은 회사가 계약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시스템화란 정리가 업무의 흐름 안에서 저절로 일어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계약이 기안되고, 검토되고, 서명되는 과정 자체가 정리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누가 어느 버전을 언제 고쳤는지가 담당자의 기록 의지와 무관하게 행위의 부산물로 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삼성이 오랫동안 "관리의 삼성"이라고 불려 온 것도 시스템이 회사를 움직이게 한다는 원칙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약관리에도 같은 원칙이 필요합니다. 즉,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담당자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누가 오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회사가 갖춰야 할 시스템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스템 위에서 계약은 비로소 데이터가 됩니다. 1편에서 정리가 AI 시대의 전제 자산이라고 말씀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 편은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입니다. 시스템이 쌓아 둔 계약과 변경이력 위에서 AI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설명드리면서 이야기를 맺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