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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변호사 인터뷰 06] 위대한 일도 초연히 한 걸음부터 | 태평양 김수진 변호사의 업무 기록

[사내변호사 인터뷰 06] 위대한 일도 초연히 한 걸음부터 | 태평양 김수진 변호사의 업무 기록

국토부 항공실, 법무부 사무관, 에어프레미아의 법무팀장을 거쳐 태평양에 합류하신 김수진 변호사님의 업무 기록을 살펴봅니다.

국토부 항공실, 법무부 사무관, 에어프레미아의 법무팀장을 거쳐 태평양에 합류하신 김수진 변호사님의 업무 기록을 살펴봅니다.

발행일

2025. 12. 10.

2025. 12. 10.

업데이트

2025. 12. 10.

2025. 12. 10.

한 개인으로서 책임질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그리고 긴 조직의 역사 속에서 개인이 남길 수 있는 족적은 얼마나 클 수 있을까요. 

국토부 항공실의 인천공항 2터미널 이슈, 5조 원 규모의 론스타 사건 법무부 대응, 그리고 에어프레미아에서의 합병 및 인수까지.  굵직한 프로젝트를 '매일의 일'로 치환하며 담담히 수행해 온 사람이 있습니다. 태평양 김수진 변호사님입니다.

복잡한 프로젝트를 한 걸음의 업무로 풀어낸 김수진 변호사님의 커리어는 변화에 대한 빠른 적응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의 등장을 보고 기자를 그만두고 로스쿨을 택했고, 에어프레미아에서 1인 법무팀장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AI라는 더 큰 파도를 마주했습니다.

국가적 소송의 압박감을 이겨낸 비결, 스타트업과 규제 산업의 간극을 메우는 노하우, 그리고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김수진 변호사님의 업무 기록을 지금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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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 영역에서 민간 영역으로의 이직을 고민하는 분

  • 거대한 프로젝트의 압박감을 다스리는 방법이 궁금한 리더

  • 규제 산업 내 스타트업의 법무/컴플라이언스 역할이 궁금한 변호사

기자에서 변호사로, 커리어의 변화를 만든 이유

원래 아시아경제에서 기자로서 근무하시다 변호사로 커리어를 전환하셨습니다. 당시 언론인으로서 느꼈던 보람과, 다른 커리어를 돌아보게 된 계기는 무엇이셨나요?

저는 2009년에 기자를 시작해서 2013년에 로스쿨에 진학했습니다. 제가 입사할 때부터도 사실 미디어 시장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처음 기자 커리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미디어 시장이 포털 사이트에 많이 쏠려 있었습니다. 종이 신문은 줄어들고 있던 추세였고요. 그런 와중에 입사 전 주에 한국에 아이폰이 나왔습니다. 저도 아이폰을 밤새서 대기한 뒤 처음 구매했는데요, 사용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자생활 초반에는  통신사와 방통위를 포함하여 IT를 담당했고, 이후 정부부처에 출입했습니다. 정책을 만드는 정부 부처에서도 변화에 대해 크게 실감을 하고 있었고, 저 역시 당시 아이폰을 써보면서 업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정말 한 달이 다르게 미디어 업계가 변화했습니다. 한편 개인으로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해야할지 혼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정말 매력적이었지만 시장이 역동적으로 변화면서 점차 축소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문에 당시에 저 말고도 로스쿨에 진학한 기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사진: 2009년 11월 25일, 아이폰 첫 출시 (경향신문 링크)

저는 당시 고등학생이었어서 아이폰의 출시가 크게 와닿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사회인으로서 느꼈던 변화는 어떤 것이 있으셨나요?

저만 해도 종이신문을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자들은 자기가 맡은 영역의 모든 신문을 보는데, 저조차도 종이신문이 아닌 모바일로 기사들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종이신문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특성이 있고, 신문은 행간에서 편집의 방향성을 볼 수 있어 더 정보의 양이 많기는 하지만, 모바일의 편리성을 이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마 아실 수도 있는데, 2009년부터 뉴욕타임즈의 구독 부수가 줄어들면서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졌습니다. ‘영미권은 물론 비영어권에서도 보는 이런 매체조차 어려움을 겪는다면 더 작은 시장을 갖고 있는 한국의 로컬 매체가 이 시대의 변화를 이겨내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뉴욕타임즈에서는 2011년부터 유능한 PM과 함께 진행한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이 성공했지만 이건 정말 큰 시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자라는 업종은 계속 존재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사회 초년생으로서 가지는 고민이 더 컸었기에 직업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아쉬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한국에는 좋은 대안 언론이 많기도 하고요.

사진: 2011년 당시 네이버 홈 화면, 뉴스가 전면에 나와 있었고, 트래픽이 종이신문에서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었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으셨을텐데, 로스쿨을 선택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할 수 있는 모든 진로를 고민했을 때, 로스쿨을 선택하는 것이 처음에 선호도가 많이 크지는 않았습니다. 학교를 3년 더 다녀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었죠. 심지어 한예종에도 지원하고, 다른 기업에도 지원했습니다. 결국 로스쿨 5기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주변인들이 로스쿨에 많이 먼저 진학하고 추천했던 것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 일을 하다가 학교를 다닌다고 하니까 설레기도 했고요. 실제로 방학의 감동이 대단했습니다(웃음). 

처음부터 변호사라는 직업을 잘 알았거나 엄청난 열정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여러 선택 중에 제일 적합하기에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이미 기자로서 일을 해봤으니까, 변호사라는 길은 정말 열심히 해볼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 큰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무슨 일이든 먼저 해 본 뒤 계속 일하는 방식이나 목표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한데, 로스쿨에 진학하면 변호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새로운 일에 몰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자의 경험이 법조인으로서 커리어를 쌓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직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기자를 하면 매우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기자 생활이 저에게 사람을 만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를 위한 스킬셋의 기저에는 경청하는 법, 질문하는 법, 호기심을 가지는 시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문제가 어떻게 증폭되었는지 등을 알아보는 일이 있습니다. 이 소프트 스킬은 기자를 하면서 훈련을 했다고 생각하고, 이게 변호사에게도 필요한 역량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변호사도 기자와 마찬가지로 경청하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호기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경우에는 질문하는 사람이 자기의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호기심을 가지고 발굴해주는 것이 중요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부처의 출입처 기자, 국토부 항공실 자문변호사가 되다

로스쿨 졸업 후 첫 커리어로 공공 영역(국토교통부, 법무부)을 선택하셨습니다. 당시 고려했던 다른 선택지들(로펌, 사기업 등)과 비교했을 때, 공공 영역이 가장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일을 해본 뒤 로스쿨에 진학했기 때문에 제가 일을 좋아하고 일에 성취감과 의미를 많이 찾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변호사로 일을 제대로 하고 싶었고, 향후 ‘변호사의 공급이 많아지고,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시장도 많아져서 할 수 있는 직역이 많아진다면 뭘 할 수 있을까?’ 를 고민했을 때, 처음 변호사가 된 뒤 5년 정도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다양하게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변호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전문성 중 하나이고, 지금은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저는 기자로서 정부부처에 출입하는 동안 정부부처에서 많은 권한을 가지고 큰 사업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토부 항공실에서 자문변호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봤을 때 바로 지원했습니다. 냉정하게 소위 말하는 ’조건’만 보자면 좋지는 않았습니다. 세종시로 가야 했고, 보수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공실은 처음으로 변호사를 뽑는 조직이었고, 변호사로만 구성된 조직이 아니라 정말 실무와 밀착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완전히 맞아떨어졌어요. 항공 산업이 매우 큰 규제산업이라 민간인으로서 접근할 기회가 잘 없는데, 실무 의사결정을 잘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또 당시 항공산업이 개편되는 시기라 드론, UAM 등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서 산업의 성장에 대한 고민이 있던 시기였고 이에 맞춰 항공법 제•개정 역시 많이 이루어지면서 정말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부처의 자문변호사 역할에 대해 바로 머릿속에서 업무가 그려지지는 못했습니다. 주로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항공실은 매우 큰 부서인데 당시에 저 혼자 자문변호사로 있었기 때문에, 사일로가 없이 실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 전반을 담당했습니다. 항공법 제•개정 절차 전반에 참여했고, 소송 대응, 대응 보고서 작성뿐만 아니라 국•실장 보고도 직접 같이 참여했습니다. 실 내의 각 부처에 직접 찾아가면서 먼저 필요한 일이 없는지 물어보고, 부처별로 과장님들께 어떤 일이 있는지 듣고, 각 부처에서 하는 계약, 항공법 내 과징금 처분에 대한 처분 심의위 준비도 수행했습니다. 이 경험으로 이후에는 심의 위원으로도 참여할 수 있었고요. 

저는 당시 항공안전국 소속이었는데, 인천공항 제2터미널 건설과 관련된 이슈 등 항공사업을 위주로 하는 옆의 항공사업국에도 가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항공실의 초임 변호사였기 때문에 업무 영역을 그려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기자로 일할 때는 몰랐는데, 내부에서 들여다 보니 중앙부처는 정말 역동적이고 헌신적으로 일합니다. 새벽 야근도 허다했고요. 항공실 내에서 다른 주무관과 사무관 분들이 정성껏 일하던 모습을 요즘도 종종 생각합니다. 


사진: 2018년 1월 개통한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법무부에서 투자 중재 소송(ISDS)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대리하신 경험은 압박감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을 것 같습니다. 어떤 소송이셨나요? 이처럼 국가적 이해관계가 걸린 거대 소송을 다룬 경험이, 이후 기업 법무팀장으로서 복잡한 M&A나 규제 이슈를 다루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당시 법무부로 이직하면서 사무관이 되었습니다.  저는 로스쿨 재학 시절부터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대체적 분쟁 해결)에 관심이 있었고, 당시 법무부의 포지션은 투자 중재를 맡는 자리였기에 친구의 추천으로 5급 사무관 특별채용에 지원을 한 뒤 합격하여 일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당시의 핵심 사건은 론스타 사건이었습니다. 론스타같은 대형 사건의 경우에는, 관련된 모든 부처가 협업해서 일하게 되기 때문에 늘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이고 좋은 의사소통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큰 일이더라도 일 단위로 쪼개서 매일의 일이 되면, 매일의 목표가 되고 사건의 중대성에 의한 부담은 줄어듭니다. 저는 이 목표를 더 잘 풀어나가기 위한 고민에만 집중했습니다. 

이 사건의 매력은 매우 복잡한 이슈와 많은 쟁점이 얽혀 있다는 것이었고, 매일같이 사건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오히려 효용감과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큰 사건인만큼 소송 기간동안 거쳐간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다행히 최종적으로 취소되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사건을 이끌어오신 태평양 변호사님께도 축하 인사를 드렸어요.

법무부에서의 경험은 지금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항공사 업무에서도 중재와 관련된 것이 많았습니다. 국내에서도 중재 소송이 적지 않고 자본이 세계화되면서 중재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기회가 있다면 ADR을 더 전문 영역으로 가져가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공공을 졸업한 뒤 민간의 영역으로

공공 영역에서 트립비토즈라는 OTA 스타트업으로 이직하신 것은 파격적인 행보라 생각합니다. 어떤 계기로 합류하셨고, 디렉터로서 법무뿐만 아니라 초기 제품 기획, 운영 전략, 조직 설계까지 맡으셨던 경험이 궁금합니다.

법무부에서 일할 때, 론스타 뿐만이 아니라 엘리엇, 메이슨 등 투자중재사건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모펀드와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맘때쯤, 좀 더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앞단에서 일하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끝난 다음보다는 더 능동적으로 사실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매력을 느꼈고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당시 지인이 트립비토즈의 C레벨로 재직중이었는데, 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디렉터급 포지션의 기회가 생겨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또 이 시기는 스타트업 광풍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저 역시 동생이 IT업계에서 일했어서 스타트업 업계 환경이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약속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5년의 시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직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디렉터의 위치에서 다른 변호사들이 경험해보지 못했을법한 일도 해보신 것이 있을까요? 

주로는 조직과 채용에 대한 것인데, 조직 운영을 통해서 시야가 넓어지고 많이 배웠습니다. 변호사로 있을 때는 변호사 위주이거나 국토부라고 해도 공무원이라는 단일한 성격의 조직에 있었는데, 스타트업에 간 이후에는 서로 다른 목표, 다양한 백그라운드와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에 대해 거는 기대치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서 일을 해야한다는 점이 신선하고 정말 어려웠습니다.

특히 자기에게 거는 기대치가 다르다는 것이 어떤 의미냐면,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난 이만큼을 해내야지’라는 기대치가 서로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타임라인에 맞춰 일해야 함을 설득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때문에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었어요.

이때 도움을 받은 것이 멘토 역할을 해주셨던 다른 회사의 C레벨 분이었는데, 제가 나의 기준에서만 구성원을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해주셨어요. 모든 일과 생각의 출발점이 ‘나’이면 안되고, 오히려 구성원들에게 저를 맞춰야 한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는데, 지금은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이라서 배울 수 있었던 큰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팀은 나 자신이나 마찬가지고, 어떤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더 나아질 것인지 고민하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9개월간의 압축적인 경험이, 이후 에어프레미아에서 법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요? 

에어프레미아에서도 이사회와 대표이사에게 바로 조언할 수 있는 포지션이었습니다. 당시 에어프레미아는 특히 지배구조에 대한 이슈가 많았기 때문에, 변호사로서 중립적이면서도 정확한 의견을 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했던 것은 정확한 법률적 의견을 드리는 것보다도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상황을 깊게 이해하고 관련된 사람들과 타 팀과 긴밀히 논의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사업에 대한 오너십을 가지는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에어프레미아의 사업이 성공하기를 바랐습니다.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잘 작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요. 비즈니스 모델의 중요성은 스타트업에서 일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항공 규제 담당 변호사가 항공사에서 할 수 있는 일

스타트업 사람들이 미국에 방문할 일이 있을 때 에어프레미아를 자주 사용해서 익히 들어봤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높은 퀄리티의 비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진님께서는 항공이라는 규제 영역 중에서도, 다른 항공사가 아닌 에어프레미아를 선택하셨던 이유가 있으셨나요?

항공산업은 규제산업인데, 항공규제 당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고, 스타트업이라는 기업 경험이 있으니까 더 넓은 시각에서 에어프레미아에서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에어프레미아는 스타트업 항공사로서  당시에 스타트업 스피릿이 굉장히 충만했고, 이 곳에서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경험을 잘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합류할 당시 비즈니스 모델이 어떤 것인지를 여쭤보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인수합병으로 시장의 개편이 일어난 자리에서 2위 항공사가 되는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시장 개편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봤기 때문에 에어프레미아라는 회사는 운이 따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확신이 있었는데,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란 조금 더 좋은 것을 조금 더 싸게 파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에어프레미아의 프리미엄 이코노미는 그에 걸맞는 상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어프레미아에서 일하는 건 제 규제에 대한 지식과 사업에 대한 기대를 잘 엮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처음 합류했을 때 에어프레미아는 아직 국내선 제주도 운항만을 하고 있었어요. 실제로 그 다음 해 미국 노선을 취항하게 되었을 때 정말 놀랍고 뿌듯했습니다. 한국의 항공 역사에서는 대한항공, 아시아나를 제외하고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진: 2022년 10월 31일, 서울-LA 정기노선을 첫 취항한 에어프레미아.

에어프레미아 합류 당시 1인 법무팀으로 시작하셨습니다. 항공 산업이라는 고도의 규제 산업에서, 당장 처리해야 할 급한 불(현안)과 장기적으로 구축해야 할 시스템(체계)이 동시에 산적해 있었을 텐데요. 가장 시급했던 과제는 무엇이었으며, 업무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셨나요?

그 전에도 법무팀이 있었지만, 조직이 바뀌면서 기존 변호사님들이 퇴사하면서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전략기획 조직 아래에 법무팀이 있었기에 전략팀과 아주 가까이 소통할 수 있었고, 많은 기회를 받았습니다. 전체 전략을 보면서 3년간 혼자 변호사로 업무를 했었네요.

혼자 업무를 하셨으면 하실 일이 매우 많았을텐데, 업무를 분류해 보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크게 세 가지의 분류가 있던 것 같습니다. 혼자 사내 변호사로 일하면, 모자를 여러개를 쓰게 됩니다.(웃음)

  1. 일상적인 법무팀의 업무(계약 검토, 송무)

  2. 비정기적이지만 중요도가 높은 업무(이사회, 지배구조 자문 등)

  3. 프로젝트 업무 (노선 확대, 아시아나&대한항공 인수합병에 따른 시정조치, 아시아나 화물 사업부의 인수 등 중장기 대형 프로젝트)

이때 특히 프로젝트 업무는 타임라인의 변동과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업무 생산성을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여러 업무를 하기 위해서 여러 툴을 썼고, 스톱워치(타임 타이머)를 끼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웃음) 이때 특히 생산성 관련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GTD를 사용해서 통상 업무를 하고, 중장기 프로젝트는 아이젠하워 4분면 도식을 그려서 업무 순위를 만들어서 트렐로에 등록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또한 매일 퇴근하기 10분 전에 다음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두고 갔습니다. 그러면 타임타이머의 시간 몇 세트로 제가 업무를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고, 업무당 얼마나 걸리는지 계산이 되어서 예측 가능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chatGPT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생각해 보면 AI로 인한 충격이 아이폰보다 컸던 것 같습니다. AI는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일의 본질을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이 듭니다. 가령 변호사가 스타트업에 합류한다고 가정해 보면 변호사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지만 스타트업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는 아예 모를 가능성도 높습니다. 저 역시 스타트업 합류 즈음 막연히 ‘코딩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당연히 팀과 업무를 이해하고 합류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죠. 

그런데 AI가 빠르게 발전한 다음부터는 특히 이런 암묵지를 이해하는데 드는 시간이 없어진 것이 큰 것 같습니다. 가령 저같아도 규제, 산업 양 쪽에서 변호사를 하면서 현업만 아는 암묵지를 이해하고 그에 부합하는 자문을 제공해올 수 있었는데, 이런 해자가 빠르게 파괴되면서 변호사에게 요구되는 기준이 올라갈 거라고 에상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다 아는 것 이상의 다른 솔루션을 제공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근래 AI를 보면, 정말 인간은 시대의 변화를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작고 유연한 회사는 물론 내 위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 역시 들고요.

스타트업의 역동적인 문화와 항공 산업의 규제 문화는 본질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이 많습니다. 변호사님께서는 에어프레미아의 기업가 정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국토교통부와 같은 규제 기관을 만족시킬 수 있는 법무 및 컴플라이언스 문화를 어떻게 설계하고 조직에 적용했는지 궁금합니다.

규제를 너무 강조하면 사업의 리스크만 보게 되고, 의사결정이 느려지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해소해주는 것은 ‘얼마나 미션에 충실한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의사결정은 그 미션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어야 합니다. 회사에 있을 때는 이 미션이 사업의 성공이었습니다. 미션을 가지면 리스크를 우회하거나, 리스크를 무조건 피하는 등의 의사결정이 유연하게 가능해집니다. 어느 방향에서 언제 속도감을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한 각론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사업부와 리스크에 대한 의견을 심하게 겪은 적은 없는데, 이것이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가 같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규제기관과 사업의 입장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관건이 될 때인데요, 규제기관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것이므로 적극적인 비용 사용이 필요하다고 해도 회사에서는 난색인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다름이 있었지만, 이런 것까지 사업부의 마음을 움직여 설득해내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변호사가 아는 것과 사업부가 아는 것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어려울 때가 있긴 했지만, 결국 그것도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억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포기하게 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면 심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좋은 팀원들로부터 경청되는 경험을 많이 겪었습니다. 회사의 초창기부터 의미있는 경험, 서로 듣고 존중하는 경험을 한 것 같아서 꺾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4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에어프레미아에 계셨습니다. 그간 코로나로 인한 항공업계의 개편과 회사의 지배구조 변경 등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혹은 법무팀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게 발휘되었던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 있으셨나요?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의 합병이 시장에 큰 영향을 주었고 법무팀에도 중요한 프로젝트였지요. 합병으로 인한 독과점을 해소하기 위해 합병당사자에게 자산의 처분 등을 포함한 시정조치가 부과되는데 에어프레미아가 그로 인하여 수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공항 슬롯이나 노선 등 신생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확보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던 자산이 시정조치를 통하여 배분되어서 회사 입장에서 정말 좋은 사업적 기회였습니다. 성장을 몇년 당길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최종적으로 5개 미국 노선(LA, 뉴욕, 시애틀, 호놀룰루, 샌프란시스코)에 대하여 운항을 확대하거나 새로 진입할 예정이며, 그로 인한 비즈니스 임팩트는 장기적으로 에어프레미아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거의 이 프로젝트만 3년을 꼬박 투입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회사에 주는 임팩트도 컸기 때문에 법무팀에서의 우선순위가 제일 높았습니다.

새로운 단계에 대해

에어프레미아를 떠나시면서, 회사의 법률적, 제도적으로 어떤 유산을 남겼다고 생각하셨나요? 에어프레미아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회사가 많이 성장했고 그것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긴 시간동안, 회사가 이루고자 했던 미션을 제가 일하는 동안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당연히 저뿐만의 일은 아니고요.

기억되기로는 ‘저 사람이랑 일해서 편했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습니다. 일을 맡기기 편했고, 협업하기 편했고, 헌신적이었다고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에어프레미아에서 여러 문제를 주셨고, 문제를 같이 풀어나가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링크)로 합류하시게 되셨습니다. 법무법인 태평양으로 합류하시게 된 계기와 각오도 궁금합니다.

제가 무척 존경하는 변호사님께서 합류를 제안하여 주셨어요. 게다가 법무법인 태평양은 항공과 규제 양 쪽 분야에서 최고의 로펌입니다. 태평양에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묶어내어 종합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체계를 갖고 있는 곳이라는 점도 장점이었습니다. 아까 AI로 인한 변화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변호사에게 요구되는 완성도가 올라가는 만큼 여러 전문가가 협업하여 수준높은 결과물을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은 더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진: 태평양에서의 프로필

공공 영역의 규제 전문가에서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파트너, 그리고 항공사의 법무팀장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경험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커리어에서 더 이뤄보고 싶은 목표나 그리고 싶은 큰 그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근래 생각하기로는, 최근과 같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서 너무 구체적인 목표를 가져서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력한 목표는 반대로 인식의 틀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해석을 여기에 맞춰서 하게 될 수 있다는 경계심이 있습니다. 사회의 변화의 강도나 진폭이 어느정도일지는 최소한 저는 아직 모르기 때문에,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업의 장점은 문제 해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문제를 풀 수 있어서 늘 즐겁습니다. 저에게 주어지는 문제가 제가 해본 적 없는 영역의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고, 그때 그 일을 좋아할 수 있도록 열어두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변호사로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둘 정도로요. 늘 스스로를 열린 상태로 두되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라면 길을 너무 잃어버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존에는 여러 경험을 하면서 저에게 주어지는, 예비된 것이 뭔지에 대해서 고민했었다면, 이제는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무언가의 해답을 만들어서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고, 이것이 지난 경력에 대한 하나의 답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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