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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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 8.

2025. 9. 8.

I bend so I don’t break | 맥킨지 서여진 변호사의 자기 탐구 여정

I bend so I don’t break | 맥킨지 서여진 변호사의 자기 탐구 여정

익숙한 세계를 떠나 새로운 도전과 적응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낸 단단한 내면과 진짜 자신감에 대한 이야기

익숙한 세계를 떠나 새로운 도전과 적응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낸 단단한 내면과 진짜 자신감에 대한 이야기

멀리서 볼 때 화려한 커리어는, 실제로는 많은 실패, 도전과 새로운 길을 향한 호기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로펌 김앤장에서 10년간 근무하고, 이후 직접 법률 서비스 회사를 창업했으며, 현재는 글로벌 컨설팅펌 맥킨지&컴퍼니(이하 “맥킨지”)의 사내 변호사로 재직 중인 서여진 변호사님을 만났습니다. 

여진님의 커리어는 법조인으로서 안정적인 길만 걸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는 안정적인 길을 벗어난 과감한 도전과 성찰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최고 로펌을 떠나 요가 지도자의 길을 걷고,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여겼던 업무 경험을 사업의 기회로 만들어냈으며, 다시 큰 조직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증명하는 과정은 호기심과 유연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진님의 여정으로 어떻게 도전이 성장의 자양분이 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전문가로서 어떻게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커리어의 전환점이나 성장의 정체기에서 고민하는 변호사 및 직장인

  • 안정적인 조직을 떠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거나 자신만의 전문성을 구축하고 싶은 분


성장의 기회와 새로운 길에 대한 모색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무려 10년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김&장의 평균 근속년수보다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힘든 시기는 없으셨나요? 일에서 어떤 의미, 보람, 혹은 성과를 찾으셨기에 긴 기간 동안 일하실 수 있으셨나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10년이 긴 시간이지만, 제가 입사할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저희 입사동기 12명 중에 제가 유학 후 가장 먼저 퇴사했어요. 10년이라는 기간이 지금 보면 길게 느껴지지만, 지금의 3-4년차에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이직 사이클로 생각해 보면, 마치 6개월에서 1년 만에 이직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죠. 

힘들었던 시기는 물론 있었어요. 단순히 업무량이 많아서 밤을 새우는 육체적인 힘듦보다는 정신적인 힘듦이 컸어요. 생각해보면 다들 그렇지 않나요? 직원은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상사/팀을 떠난다는 말도 있잖아요. 회사에서도 괜히 남과 나를 비교하거나, 나만 왜 이런 잡일을 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가장 큰 원인은 그냥 그 때 어렸어요. 26살, 첫 직장생활, 사회생활이잖아요. 모르는 게 많은 건 당연했는데 말이죠. 원래 힘들고 알 수 없는 시기가 20대인데 ‘시간당 rate(비용)가 xx원’이나 되는 전문가로서 뭔가를 제대로 알고 해야한다는 압박감, 그 가격에 내가 미치는 수준이 아니라는 자괴감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2016년, 김앤장 송별회 당시의 사진) 


당시에는 그런 문화가 있었군요, 김&장을 나오시게 된 계기에 대해 조금 더 여쭤보아도 될까요? 시니어 변호사로서 큰 결심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많이들 큰 결심이라고 보시지만, 사실 제겐 그렇지 않았습니다. 연애에서 서로가 권태기에 접어든 걸 알게 되면, 상대가 먼저 말 꺼내기 전에 그냥 내가 먼저 끝내잖아요? 특별히 충격적인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이 길에서는 오래 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점점 분명해졌고, 어쩌다보니 10년 가까이 있어서 ‘이쯤이면 그만둬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퇴사 자체는 그래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고, 오히려 그 다음에 무엇을 할지 정하는 것이 더 큰 도전이자 결심이었습니다. 요가에 몰두한 것, 그리고 나중에 창업으로 이어진 선택이 저한테는 진짜 모험이었죠.


조직 밖에서의 도전 - 요가 수련과 ‘티엘서비스’ 창업

퇴사 이후 시작하신 사업인 "티엘서비스"는 어떤 서비스를 제공한 회사인가요? 티엘서비스만의 가치를 구축하고, 직접 end-to-end 업무를 수행하시면서 많은 경험을 쌓으셨다고 하신 글을 보았는데, 이전 변호사로서의 업무 경험과 어떻게 달랐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티엘서비스'는 대체 법률 서비스 제공자(Alternative Legal Service Provider, ALSP) 회사였어요. 한국에는 아직은 생소한 모델인데, 굳이 비유하자면 로펌이 풀코스 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라면, ALSP는 샐러드만 주문하는 케이터링 서비스나 벤더와 비슷해요. 고객은 크게 세 부류였죠.

  1. 대형 로펌: 김앤장을 포함한 대형 로펌에 패러리걸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쉽게 얘기하면 법률 번역이지만, 기본 법률 지식이 필요한 영역이었어요. 예를 들어 한국 변호사가 국문으로 작성한 법률 의견서 개요를 바탕으로 영문 의견서 초안을 써주거나, 법원 제출용 리서치 자료의 출처를 채워 넣거나, 매우 긴 내용의 펀드 계약서를 요약하는 등 외국 변호사 1년차가 할 법한 일들을 대신해주는 서비스였죠.

  2. 미국 VC: 한국에 10억~20억 정도를 투자하는 미국 VC들을 위해 고정된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투자 규모가 대형 로펌을 쓰기에는 애매하지만, 미국 LP들에게 보고하려면 필요한 서류는 다 갖춰야 하거든요. 저희가 약식 실사 보고서 작성, 투자 계약서 작성 및 협의 등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처리해 주었죠.

  3. 스타트업: 미국 VC에게 서비스를 하다 보니, 투자를 받은 후 법무팀이 없는 스타트업도 연결이 되어서 계약서 관리나 법률 자문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처음부터 사업을 계획했던 건 아니에요. 김앤장을 그만두고 당시에는 변호사가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커리어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으로 2년간 요가에만 전념했는데, 변호사 일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김앤장 패러리걸 번역팀에서 프리랜서로 일해달라는 제안이 왔고, 소일거리로 시작한 일이 점점 커져서 프리랜서에서 개인사업자, 법인사업자로까지 발전하게 된 거죠. 김앤장에서 잡일이라고 생각했던 업무들, 예를 들어 번역팀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영문 의견서를 만들었던 경험이 사업의 기회가 된 거예요. 그때는 몰랐지만, 저에게는 쉬운 그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고, 그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일이었던 거죠. 그러니 잡일로 생각했던 그때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발시켜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업무였는데, 스스로를 너무 깔봤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티엘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커리어 캐피탈 중에서도 내재적인 영역인데요, 주체성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클라이언트 발굴, 수임료 협상, 계약 체결, 세금계산서 발행, 심지어 돈을 주지 않는 악성 클라이언트 정리까지 모든 것을 제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했죠. 이런 경험들은 직원이 아닌 기업가로서 저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어요.

김앤장이나 맥킨지 같은 큰 기업은 하나의 플랫폼으로 작용을 해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관계 캐피탈'을 쌓을 수 있지만, 한편 "이 플랫폼을 나가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요. 하지만 '티엘서비스' 에서는 플랫폼이 작은 한편 '나'라는 사람 자체의 역량, 즉 '내재적인 캐피탈'을 키울 수 있었어요. 김앤장이 아니라 정말 나를 보고 오는 고객이고, 웹사이트도 내가 만들었고, 직원도 내가 채용해서 내가 월급을 주고 있고 막상 나와서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직접 해보니 "다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라는 캐피탈(자본)을 얻게 된 거죠. 이 자신감이 있으면 뭐든지 더 쉬운 것 같습니다.

(2017년에 창업하신 T Legal Service의 로고)


국내에서 손꼽히는 요가수련자이자 강사이시기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가를 시작하게 되시고, 커리어로서 가져가게 되신 계기는 어떻게 될까요?

요가는 처음엔 일하면서 운동으로 시작했어요. 제가 운동은 골프, 수영, 발레, 힙합 댄스까지 해볼 정도로 다 좋아하기는 하지만 6개월 이상 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로 금방 싫증이 났는데, 유독 요가는 꾸준히 하게 되더라고요. 더 깊이 배우고 싶어서 김앤장에 다닐 때 주말 과정을 통해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땄어요. 처음에는 공부 삼아 한 거지, 이걸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러다 2013-2014년쯤 회사에서 유학을 보내주는 시기가 있었는데, 1년간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니 시각이 바뀌더라고요. 유학 후 복귀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는 고민이 깊어졌어요. 마음이 복잡할 땐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라, 요가 수련 시간을 많이 늘렸어요. 길게는 2시간씩 요가에 매달렸죠.

그때는 무언가에 미쳐있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저는 서울법대, 사법시험, 김앤장까지 정해진 길만 걸어왔거든요. 한 번쯤은 과감하게 새로운 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통상 김앤장에서 퇴사를 하면 법원을 가거나, 사내 변호사로 이직을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분야인 요가에 도전하게 된 거죠.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지만, 당시에는 '나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맞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피하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 같아요.

아무런 배경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요가 강사로서의 커리어를 쌓아나갔어요. 당시 요가 강사로서도 커리어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 목표를 2년 안에 계획대로 실행하면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죠. 김앤장에서 성공적인 10년을 보냈다고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김앤장에서 스타 변호사가 되지는 못했고, '잘 하지 못해서, 미래를 더 보기 어려워서 나왔다'는 상처가 마음 한편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가를 수련하면서, 몸이 건강해져서도 있지만 법조계가 아닌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브랜드를 쌓고, 무언가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은 그때 얻었던 상처를 치유해주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어요.


(국내에서 손꼽히는 요가 수련자였을 당시의 강연 사진)


새로운 가능성 시험 - 맥킨지에서 찾은 역할과 AI의 시대

세계 최고의 컨설팅펌인 '맥킨지(McKinsey & Company)'로 이직하셨습니다. 사업을 하셨기에 다시 조직으로 돌아오시는 것이 큰 결심이었을 것 같은데, 맥킨지라는 회사, 그리고 맥킨지에서의 직무와 관련하여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끼셨는지요?

큰 결심이었던 것이 맞아요. 사람들은 김앤장을 그만두고 요가를 시작한 것을 큰 결심이라고 하지만, 제게는 사업으로 자신감을 쌓은 뒤에 다시 직원이 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결심이었어요. 티엘서비스를 운영하면서 큰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는 동시에, ‘나는 조직생활과는 맞지 않는 사람일까?’라는 의문도 남아 있었거든요. 다시 큰 조직에 들어가서 그 의문이 단순히 커리어 초기에 가졌던 미숙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본질적인 문제였는지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티엘서비스'가 4-5년차에 접어들면서 일이 안정되고 조금은 느슨해질 무렵, 신기하게도 리크루터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만약 사업 초창기였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타이밍이 절묘했죠.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고 말이 잘 통해서 '이 사람들과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저는 맥킨지를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과거의 의문을 정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 있는 장으로 생각했습니다. 


(Legal500에서 개최한 사내변호사 서밋에서 기조연설중이신 서여진 변호사님)

맥킨지에서 APAC Legal 업무를 맡고 계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업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맥킨지에서 저는 아시아, 태평양(APAC) 지역을 담당하는 리걸팀의 일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역을 초월해 하나의 팀으로 협업하는 구조라서, 한국에 있으면서도 다양한 국가의 업무를 맡을 수 있습니다. 주된 역할은 맥킨지와 클라이언트 간의 계약 및 법률 관계를 자문, 관리하는 것이고, 필요할 때는 프로젝트 팀에 법률적인 시각을 더해주는 고문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후속 질문) 담당하시는 지역 커버리지가 넓은데, 타국의 법령과 제도에 관한 업무를 하시는 것이 어렵지 않으신지요?

처음에는 저도 어떻게 다른 나라 업무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팀 내에 잘 정립된 원칙과 방침, 그리고 공통 플랫폼이 있어서 새로운 툴만 잘 익히면 어느 나라 업무든 큰 어려움 없이 처리할 수 있어요. 특정 나라에서 운전면허 따면 다른 나라에서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운전할 수 있듯이요. 


Korea Law 101을 저술하시게 된 배경과 목적을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소개 문구에서 외국변호사 및 한국사업가들을 위한 책으로 설명이 되어 있는데, 주로 어떤 독자가 읽으면 좋을까요?

이 책은 거창한 책은 아니고 얇은 핸드북에 가깝고, 썼다기보다도 편집에 가까워요. 제가 맥킨지 리걸팀의 유일한 한국 변호사이다 보니, 다른 나라의 외국 변호사나 컨설턴트들에게 한국의 법과 제도를 쉽고 짧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예요. 그분들은 똑똑하지만 한국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요. 이메일이 몇 줄만 넘어가도 읽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정제해서 설명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죠.

그 내용을 정리해서 링크드인에 시리즈로 올렸는데, 반응이 좋아서 IHCF(인하우스카운슬포럼)에서 특강 요청이 들어왔고, 그 강의 자료를 바탕으로 핸드북을 만들게 된 거죠. 업무의 결과물이 링크드인 시리즈가 되고, 그게 다시 강의 자료가 되고, 최종적으로 책이 된 셈이에요.

주요 독자는 로펌에서 1-2년차로 일하는 미국 변호사나,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 사내변호사처럼 한국 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분들이에요. 이 책을 계기로 UC Irvine에서 특강도 하게 되고, 새로운 사람들과 연결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어요. 현재는 내용을 보강해서 업그레이드판을 준비 중입니다.

(업무에서의 배운 점을 활용하여 콘텐츠로, 책으로, 강의로까지 이어진 인연 - UC Irvine의 강연 홍보 자료)

현장에서 느끼는 리걸테크로 인한 변화 - 맥킨지 내부 AI 툴인 'Lilli'를 비롯해 다양한 리걸 AI 솔루션을 직접 사용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Harvey, Legora 등 다양한 Legal AI 서비스들이 현재 기술 수준에서 변호사의 업무를 가장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기능은 무엇이며, 반대로 '이것만큼은 아직 멀었다'고 느끼는 한계는 무엇인가요? 

네, 여러 리걸테크 툴을 직접 경험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티엘서비스' 같은 중소 로펌이나 개업 변호사에게는 정말 날개를 달아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지금 개업한다면 꼭 도입해서 쓸 것 같아요. 기본적인 서면 작성, 리서치, 방대한 서류 검토, 증거 목록 작성 등 주니어 변호사가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던 업무들에서 가장 큰 도움이 돼요. 특히 법률 리서치나 판례 인용 같은 부분에서요.

반면 사내변호사의 경우에는 업무 특성상 협상, 자문, 의사결정 지원처럼 보다 맥락이 복잡하고 사람 간의 소통이 중요한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현재 단계의 AI가 제 업무에 주는 직접적인 효용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입니다. 여러 곳에서 “혁신”이라고 이야기되지만, 저에게는 아직 큰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계약서 검토 및 관리(CLM) 시스템의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변호사의 'shallow work'를 늘리는지, 혹은 업무를 편하게 한다면 어떤 점에서 편해지는지 경험을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CLM 시스템은 계약 건의 진행 상황을 추적하고 관리하는 데는 유용합니다. 다만 실제로는 여러 조직의 요구사항과 기존 프로세스와의 연계 문제로 인해, 사내변호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는 정보가 많아질수록 자동화되지 않은 반복 작업이 늘어나고, 도리어 효율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보다도, ‘조직의 필요와 프로세스에 맞게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잘 정착된 경우에는 투명성과 추적 가능성을 높여주지만, 도입과정에서는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AI 시대, 변호사의 본질과 제언

“Tech의 발전으로 법조인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똑같은 ‘개업한 개인변호사’라도 내 취향에 맞는 tech를 레버리지로 무지개빛 변주를 줄 수 있다.” 고 하셨는데요, Tech 친화도를 어떻게 올리셨는지, ‘건강 관리 하듯’ 기술을 습득한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 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테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티엘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익히게 됐죠. 리소스가 부족하니 최대한 툴을 활용해서 효율을 높여야 했거든요. 홈페이지 도메인을 연결하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툴을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부딪히면서 자연스럽게 친화도가 높아졌어요. 조직에만 있던 동료들과는 다른 강점이 생긴 거죠.

'건강 관리하듯 기술을 습득하자'는 것은, 쏟아지는 정보에 압도당하지 말고 꾸준히, 조금씩 해나가자는 의미예요. 건강 정보도 케토 다이어트, 간헐적 단식처럼 복잡한 게 많지만, 결국 핵심은 몇 가지 근력 운동, 유연성, 유산소 운동이잖아요. 기술도 마찬가지예요. 매일 10분 정도 잘 쓰여진 뉴스레터(저는 Cal Newport의 뉴스레터를 추천합니다)를 읽고, 남들이 많이 쓰는 툴 하나만이라도 꾸준히 써보는 거죠. 내 생산성을 높여주는 것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활용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간과 함께 복리처럼 쌓입니다. 

(리걸테크에 관련해서도 활발히 강연하고 계시지만, 오히려 인터뷰에서는 압도되지 않는 것을 강조했다)


AI 시대, 대체 불가능한 변호사의 가치로 변호사님께서는 '설득하고 책임지는 일'이라는 본질을 강조하셨습니다. AI 시대에 오히려 변호사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가 더 선명해진다면, 그 핵심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주니어 변호사들은 AI를 어떻게 사용하고, 스스로는 어떤 역량을 연마해야 미래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대체 가능하지만, AI가 결코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책임'을 지는 일이에요. AI는 정교한 법률 문서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는 없죠. 인공지능이 잘 하는 일은 약간은 부정확하지만 매우 빠르게 정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고, 이 측면에서 사람이 경쟁을 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법률적인 문제나 판단은 명확하게 흑백으로 나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무엇이 정당하고 부당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상대를 설득하고, 최종적인 판단을 받아내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죠. 변호사는 자신의 이름과 명성을 걸고 "이건 괜찮다"고 말해주고, 그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에요. 고객들은 책임을 져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그 '책임감'이야말로 AI 시대에 변호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해요.


IHCF의 강의 중 In-house 101에서 리걸 리서치를 담당하시는 등 열심히 활동하시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오신 선배로서, 커리어의 변곡점에서 고민하는 후배 변호사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특히 '안정적인 대형 로펌 혹은 대기업의 사내변호사'와 '불확실하지만 주도적인 길' 사이에서 고민하는 후배가 있다면,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보라고 하시겠어요?

제가 김앤장에 입사한 당시에는 한번 입사하면 계속 다닐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기회를 보거나, 이곳을 발판 삼아 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죠. 만약 얘기해줄 수 있다면, "이곳은 평생직장이 아니라, 4-5년 후에 이직하기 위해 필요한 인맥, 자료, 즉 '커리어 캐피탈'을 모으는 과정이다."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하고 싶네요.

사람마다 처해 있는 입장이 달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 성향과 욕구는 삶의 단계에 따라 계속 변한다는 거예요.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현재 내 삶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중요해요. 진취적으로 도전하며 나를 갈아 넣고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한 시기가 있고,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안정을 추구하게 되는 시기도 있을 수 있죠.

그리고 100% 완벽한 결정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신속하게 결정하고, 그 결정이 옳은 선택이 되도록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인지도와 영향력이 있는 기업 변호사', '국제 무대에서의 활동', 그리고 '가족, 친구와의 단단한 행복과 몸과 마음의 건강'을 목표로 언급하셨습니다. 현재 그 목표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루어 나가고 계신지, 그리고 이 인터뷰를 기점으로 또 새롭게 그리고 있는 다음 챕터의 비전이 있다면 무엇인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목표들은 맥킨지로 이직할 때 세웠던 것들인데,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또 다른 꿈과 우선순위가 생겼습니다. 최근 저는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흔히 조기은퇴라고 하면 일을 완전히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다니거나 취미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은퇴도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고, 마치 변호사라는 직업이 반드시 법정에서 변론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듯, 일과 삶의 방식도 시대에 맞게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4년은 고등학생이 된 아들을 가까이에서 지원하는 것이 제게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래서 커리어도 그 단계에 맞게 조율하려 합니다. 삶의 시기마다 가장 소중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가 쌓아온 캐피탈 (내재적 역량, 관계, 그리고 재정적 기반)을 활용해 인생을 설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커리어를 시작하는 주니어 변호사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커리어 초기에는 "이 일을 왜 해야 하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려웠어요. 연수원을 마치면 보통 판사, 검사, 로펌 변호사라는 세 가지 길이 있었는데, 저는 제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잘 몰랐어요. 막연하게 김앤장이 조금 더 근사해 보였고, 사회 정의 구현 같은 거창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막상 입사해서는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는 업무들이 많았기도 했고요. 당시에는 외국 변호사가 많지 않아서, 한국어로 된 내용을 듣고 외국어로 풀어쓰는 기본적인 소통 업무나 번역 업무를 많이 해서 마치 번역가로 쓰이는 듯한 느낌도 들었어요. 선배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야 구슬이 꿰어지고 성장한다고 했지만, 저는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까지 겹치면서 커리어에서 의미를 찾기 어려웠어요. "계약서 토씨 하나 찾아서 자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지금 돌아가서 만약 그때의 저에게 조언한다면, 선배들의 조언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어차피 처음 1년은 그런 시기니 이왕 할 것 즐겁게 하고, 절대로 남과 비교하지 마라." 동기 변호사들을 보면 뭔가 더 근사한 일을 하는 것 같아도 그들도 똑같은 하면서 근사한 척을 하고 있는 것이었거든요, 그리고 당시에는 4-5년차 선배들이 너무나 전문적으로 보였고, 뭘 알아야 하고 변호사로써 어떤 행동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얘기했는데, 그 모습에 압도당해 스스로가 초라하고 충분히 잘 하지 못한다고 느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4-5년차도 별거 아닌데 말이죠. "너만 그런 게 아니야. 그들도 말만 근사하게 할 뿐, 똑같이 시달리고 있고, 그 선배들도 사실은 잘 모르는 게 많아."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남들도 보통 잘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남과 비교하며 주눅들 필요 없어요.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지금 있는 자리가 스타트업이든, 법원이든, 어디든 간에 그곳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캐피탈'을 쌓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팟캐스트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이라는 단어는 1930년대에도 있었어요.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감은 새로운 것이 아니죠.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매몰되거나 불안해하기보다는,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 바로 옆 사람에게 배우고, 오늘 주어진 일에서 배우는 것에 집중하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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